비의료인인 사무장에 고용돼 1년 9개월가량 명의를 빌려주고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51억원에 달하는 요양급여 징수처분을 뒤집어쓰게 됐다.
고용기간 동안 월 1200만원과 승용차를 제공받은 이 의사는 법정에서 "51억원을 징수하면 개인파산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변호사, 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과 달리 의료인은 파산선고를 받더라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파산에 이른다고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해당 병원을 포함해 다수 병원을 문어발식으로 경영해온 사무장은 최근 관련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를 확정 받고 풀려나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의사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비용 징수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05년 5월부터 2007년 2월까지 비의료인인 정 아무개씨로부터 월급 1200만원에 그랜저 승용차 한 대를 받는 조건으로 서울 대방동 소재 요양병원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정씨는 이 곳 이외에도 서울시내 4곳에 순차적으로 요양병원을 열어 수익을 올리고 있던 상황. 이를 적발한 검찰은 정씨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을 구형했지만, 지난 5월 진행된 항소심에서 3년간 집행을 유예하는 선고를 받아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남은 건 의사 명의를 빌려준 A씨 앞으로 통보된 51억여원의 징수처분이었다.
재판부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할 뿐 아니라, 사회통념상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고 있다"며 사무장병원 개설명의자에게 징수처분을 하는 규정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당하게 지급된 요양급여 전액을 징수하는 게 원칙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2007년 개정된 의료법으로 파산선고가 의료인의 면허취소 사유에서 삭제된 점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이 처분으로 인해 개인파산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처분 액수가 51억여원에 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의료인은 파산선고를 받는 것이 면허취소와 무관하다. 파산에 이른다고 해도 생계수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