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150여명, 명예훼손 혐의로 한정호 교수 고발

[라포르시안]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한방간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한의사협회와 한의사 150여명이 최근 충북대병원 한정호 교수와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유용상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한의협과 한의사들이 이 두 사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이유는 지난 1월 TV와 라디오 등의 방송매체에 출연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반대 주장을 펼치면서 한 발언 중 일부 내용이 한의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 위원인 한정호 교수<사진>는 TBS 교통방송과 BBS 불교방송,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 등의 매체에 잇따라 출연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한 교수는 지난 1월 23일 BBS 불교방송 라디오 ‘양창욱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하는 건 한의학적 치료법이 효과가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방송에서 한 교수는 "국민들이 한의학에 대해서 응급질환이나 대부분의 중증 질환을 치료받는 사람들이 줄고 그러다보니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자꾸 넘보려고 하는 것"이라며 "사실 한의사협회에서 과거와 입장을 바꿔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하고 싶어 하는 것 자체는 존의 한방의 진료기기 또는 진료방법이 현재 우리 사회의 병을 진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한의학에서는 자꾸 (한의대)교육과정의 70%가 현대 의사의 교육과정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며 "기존의 한의대에서 교육할 게 그렇게 없었나. 어쩌다가 교육과정의 70%를 자기네 한방교육을 포기하고 현대의학을 갖다 붙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26일 방송된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서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특히 한의계가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의 근거로 주장하는 한의대 교과과정 중 현대의학과정 수업이 상당히 부실하게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한수진의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의대에서 정말 75%를 현대의학을 배운다면 그건 한의대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민족의 정통의학이라는 한의학에서 오죽 배울 게 없으면 한의대에서 25%에서 20%밖에 안 가르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방송 때문에 실제 한의대에서 뭘 배우는지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의대의 대표라는 경희대학교 한의대 과정을 찾아봤더니 방사선학을 의과대학 6년 중에 딱 1년 동안 일주일에 1시간씩 배우고 있었다"며 "(한의대에서)강의하는 사람도 의사나 전문의가 아니라 개원한 한의사 3명이서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날 TBS 교통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에 출연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놓고 한의협 김지호 홍보이사와 논쟁을 했다. 

유용상 위원장은 지난 1월 15일 ‘X레이, 초음파기기 사용…의사․한의사 충돌’을 주제로 의사와 한의사를 초청해 진행된 토론회에서 한 발언을 놓고 한의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당시 한의협은 "유 위원장은 '최근 중국에서는 한의학을 폐지하자는 운동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1000원짜리 한약을 가지고 50만원씩 받습니다'라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과는 연관성도 없고, 전혀 근거도 없는 막말로 시청자들을 현혹했다"고 비난했다. 

급기야 한정호 교수와 유용상 위원장이 방송매체에 출연해 언급한 발언 중에 한의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있다고 판단해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지난 12일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명예훼손 고발건으로 용산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아직 고발장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부분을 문제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송매체를 통해 한의계 쪽 인사가 함께 출연하거나 상호 토론 형식으로 주장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내용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고발한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TBS 교통방송의 경우 한정호 교수와 한의협 김지호 홍보이사가 같이 출연해 토론 형식으로 진행됐고, BBS 불교방송에서는 한 교수와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신병철 교수가 같은 날 차례로 출연했다.  

SBS 라디오에도 한정호 교수와 한의협 김지호 홍보이사가 같은 날 각각 출연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의견을 피력했다. 

한 교수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동등하게 발언권을 갖고 토론을 한 것이고, 한의계 쪽 인사가 내가 한 발언에 대해 반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했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해  의료계가 대외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은 형법상 명예훼손죄 적용을 남발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는 문제와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실제로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형법상 명예훼손죄 적용이 남용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는 폐단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없애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에도 명예훼손죄와 관련해 징역형 폐지 및 벌금형의 상한을 낮추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이 지난해 의원입법(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으로 발의됐다. 

한 교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한다고 해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근본적인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며 "앞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을 남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개선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의협 측에서는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과 관련해 악의적인 발언으로 한의사의 명예를 훼손한 의사들에 대한 추가 고발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의협 김지호 홍보이사는 "한정호 교수 고발건에 대해서는 정확히 무슨 내용으로 문제를 삼았는지 확인해 봐야 알 것 같다"며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는 양의사들이 많았다. 이들에 대해서도 추가로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