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노무에서의 임금 관련 쟁점 - 이상민 변호사]

병‧의원에서 사용자인 의사와 근로자 사이의 관계는 일반 기업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분야의 특수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경우를 그대로 따라가도 되는 것인지 다소 헷갈리는 경우들이 있다. 아래에서는 그 중 근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임금과 관련한 몇 가지 사안을 짚어보도록 한다.

1. 공동(대표)원장에게도 퇴직금을 줘야 하나요.

개원의가 진료업무를 분담할 다른 의사(봉직의)를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그 봉직의도 통상 ‘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홈페이지에는 의료진을 소개하면서 어느 과의 OOO원장이라 소개하고 심지어는 ‘공동원장’, ‘대표원장’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문제가 없겠으나 사이가 틀어져 계약이 해지되거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봉직의가 퇴직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문제다. 병원 입장에서는 월급도 연봉제로 (게다가 굉장히 많이) 줬고, 진료도 각자 맡은 환자를 알아서 진료하는 방식이었는데 퇴직금을 줘야 하는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는 근로의 실질을 봐야 한다. 그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사용자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 종속적인 지위에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보수가 고액이었는지, 고정급이었는지 아니면 인센티브제였는지, 근로자가 어떤 직함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등은 부수적인 판단요소는 될 수 있어도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심지어 환자에 대한 진료는 그 원장이 알아서 했을 뿐 대표원장이 전혀 간섭한 바 없다고 해도 근로자성이 마냥 부정되지는 않는다. 근로시간과 근무장소가 정해져 있고, 외출을 하거나 휴가를 쓸 때는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쓸 수 있는 휴가일수도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등 실질적으로 관리‧감독을 받는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 원장 또는 공동원장이라는 직함을 썼더라도 근로자에 해당하고, 퇴직금도 주어야 한다.

결국 계약의 실질이 중요하다. 고용된 다른 의사가 병원의 수익을 나눠 갖거나 병원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등 단순한 봉직의라 볼 수 없고 차라리 동업자에 가까운 관계에 있다면 퇴직금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병원 경영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정해진 시간‧장소에서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지급해주기로 하는 대부분의 계약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2.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켜서 주기로 계약한 경우에는 어떤가요.

진료의사와의 근로계약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보수가 비교적 고액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병원 입장에서는 퇴직 후 퇴직금 지급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이에 일시에 큰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채무불이행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계약체결 시 퇴직금은 월급 또는 연봉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을 두거나 어떤 경우에는 근로자가 퇴직금을 청구하지 않기로 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퇴직금을 사전에 포기하기로 하는 약정은 무효다. 퇴직금을 퇴직 후 일시불로 주는 대신 이를 12개월로 나누어 월급에 미리 포함시켜 주기로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병원 입장에서는 퇴직금을 주는 대신 연봉을 높게 책정해 준 것이라서 오히려 근로자를 배려한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퇴직금 제도를 잠탈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을 받기 십상이다. 이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는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마치 퇴직금을 이중으로 지급해 주게 되는 것과 같은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퇴직금 지급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근로계약 설정 시 퇴직금 지급을 예상하여 임금 협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일반적으로는 원천징수의무자인 사용자가 제세공과금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월급으로 지급하는 세전 계약을 하지만 이와 달리 사용자가 제세공과금을 대납하기로 하고 이를 제외한 실 수령액을 일정 이상 보장하기로 계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세후 계약 또는 넷(NET)계약이다. 이 경우 퇴직금 산정 시 세전 금액 또는 세후 금액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가 문제되나 세전 금액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넷계약은 근로자가 실 수령액을 명확히 예상할 수 있는 면이 있어 근로의욕을 고취시킨다는 차원에서 많이 진행되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산 후 세액의 예측이 어렵고 분쟁의 소지를 많이 남긴다는 측면에서 권장하기 어렵다.

3. 포괄임금제는 유효한가요.

병‧의원 노무관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 중 하나가 포괄임금 형식의 계약이다. 포괄임금은 시간 외 근로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고정된 금액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주로 연장근로의 가능성이 상시 열려있는 업종에 있거나 그로 인해 초과 근로한 시간을 일일이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또는 사용자의 초과근로수당 산정 편의를 위해 활용된다.

포괄임금제는 엄밀히 말해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일정 비율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엄격한 요건 하에 포괄임금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의 성격상 현장 일이 많은 건설근로자나 영업사원들에게 적용되기 쉽고, 이들 근로자 역시 자신의 연장근로를 일일이 체크할 수 없다는 면에서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문인식기 등 첨단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진 장소에서 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위 ‘근로시간의 정확한 산정이 곤란한 경우’라는 요건이 인정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포괄임금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의원의 경우 상시 연장근로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나 근무장소가 수시로 변화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즉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괄임금 형식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추후 분쟁의 불씨를 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의 특성상 일정 시간 이상의 연장근로가 확실히 예상되고 그 계산을 간이하게 하고 싶은 상황이라면 고정급에 포함되는 연장근로시간과 그 수당의 산정방식을 계약서에 명시하여야 분쟁이 발생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

한편 정부는 포괄임금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에 있다. 노‧사의 입장 차가 큰 이유로 가이드라인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는 있으나 일단 올 상반기에 발표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만큼 근로계약에 포괄임금 약정을 사용하고 있는 병‧의원에서는 이를 예의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