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를 위한 의료기기 개념 정립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 서비스에 대한 임시 허가를 부여하면서 원격의료에 대한 긍정적인 예측이 관련 산업 전반을 휩쓸고 있다. 원격의료와 원격진료가 무엇인지, 비대면 진료와 차이가 있는지 등 근본적으로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남아있기는 하나, 비대면 문화가 점차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원격의료의 확대를 무조건 막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수차례 원격의료를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거나 입법예고된 바 있었고, 해당 법안들은 대체적으로 원격진료 대상 환자 범위나 의료기관의 종별을 엄격히 제한하고 의사-환자 관계는 기본적으로 대면 진료를 통해 성립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히 2월 시행된 의료법 개정안은 종전까지 건강보험급여 적용 과정에서 편법으로 허용되었던 환자 가족 등에게 반복 처방에 따른 처방전 발급을 전면 합법화 하였고, 우리 법원이 수년간 전화 진료를 통한 처방전 발급을 허용하면서도 최근 전화진료를 통한 처방전 발급이 적법하기 위한 조건으로 사전 대면진료를 통한 환자의 상태 확인을 제시하였다. 즉 현행 의료법과 건강보험 체계 하에서, 공익적 목적의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요구되지 않는 일부 비급여 진료의 경우 최초 대면진료 이후 추가적인 의약품 처방이나 경과관찰에 대해 합법적으로 전화 등을 통한 진료를 시행하고 그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이다.

이렇듯 이미 일정 형태의 비대면 진료가 합법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많은 의사나 개발자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리행위를 매개하지 않는 진료 상담 관련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이며, 심지어 한의학 영역에서는 단순한 화상진료를 넘어 능동적으로 환자가 사진 등을 전송하고 한의사는 조제한 한약을 배송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개발된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 확대의 물줄기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환자정보 보호를 위한 시스템과 의료행위 개념의 재정립이 중요하고, 이에 더해 원격의료를 위해 사용되는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기관의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 내는 것이 비대면 진료로 인해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차단의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특히 휴대형(portable) 또는 착용형(웨어러블, wearable)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나 사용은 해당 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는 한 상용화 목적에 구애됨이 없이 확대되어야 한다. 휴대형 혹은 웨어러블 의료기기는 우리 의료기기법의 의료기기 정의에 따라 ‘질병, 상해 또는 장애, 구조를 진단’ 및 ‘구조 또는 기능을 검사’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에 해당한다. 그런데 의료기기의 사용 목적인 특정 진단 또는 검사는 의료기기 개발 전에는 반드시 의료행위를 통해 이루어졌으나, 의료기기 허가라는 행위를 통해 비(非) 의료행위로 전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혈압계의 개발 전까지는 의료인이 직접 청진기와 수은 혈압계를 통해 혈압을 측정하였으나, 자동혈압계 개발 이후에는 환자 개인이 직접 해당 기기의 사용방법을 익혀 혈압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구체적인 혈압의 측정이라는 행위는 의료기기로 인해 의료행위가 수반되지 않고도 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측정된 혈압을 통한 최종적인 진단이나 검사결과 도출에 의료행위가 개입될 뿐이다. 또한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기기들이 의료행위 개입을 최소화 한 기기 사용 및 진단결과 도출을 목표로 하며, 결국 환자에 대한 진단 및 치료 과정에서 의료인의 의료행위 개입 범위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의료기기 사용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은 해당 기기기 어떠한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는지, 개발 경위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기기의 안전성 및 유효성이 의학적인 관점에서 입증되었는지 여부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규제당국이 웰니스(wellness) 제품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여 일상적 건강관리나 만성질환자 자가관리용 제품을 공산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의료행위 대체라는 의료기기의 본질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비춰진다. 향후 원격진료 확대에 따라 환자에게 진단 또는 검사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은 사용자 범위나 사용 장소와 무관하게 일률적인 관리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