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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시행된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제도로 인한 혼란에 대해 국토교통부 장관을 질책하며 "국민이 실험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2기 내각 구성 후 열린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 같이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서승환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새로운 교통 관련 정책에 대한 보고를 받고 "좋은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또 현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나 불편이 있을 수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을 실천하기 전에 피드백을 받고 시행이 됐으면 한다. 그런 것을 거치지 않으면 국민이 실험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서 장관이 "입석버스와 관련해서 문제를 일으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국민이 완전히 실험대상이 됐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새로운 교통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현장의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파악해 개선책을 찾지 않음으로써 부작용과 혼란이 생긴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국토부 장관을 질책하며 한 '국민이 실험대상이 됐다'는 말이 낯설지 않다. 

어디서 들어본 말일까.

바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에 대해서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우려를 쏟아내며 한 말이다. 

의료계 "안전성·유효성도 검증 안된 원격의료 허용은 전국민 대상 임상시험"

정부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을 표출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 도입이 미치는 파급 효과와 충격, 그리고 위험성 때문에 그동안 의료계를 비롯해 국회, 시민단체까지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려고 하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숙의하는 정책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정부기관의 의무를 망각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특히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강한 우려를 제기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는 비용에 따른 치료 안전성이 입증된 바 없을 뿐 아니라 시범사업 결과도 공개적으로 발표되거나 논의된 적이 없다"며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재벌기업들을 위한 임상시험을 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와 마찬가지로 보건의료·시민사회단체에서도 "복지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재벌기업들을 위한 원격진료 임상시험을 하려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국민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란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우려는 박 대통령이 광역버스 입석금지로 인한 혼란을 질책하며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정책 추진에 앞서 사전에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여기에서 그친다.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차원에서 추진하는 각종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초 의사-환자가 원격의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의료계와 공동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겠다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당연히 안전성과 유효성을 먼저 검증한 후 법개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엉뚱하게 법개정을 먼저 추진하고 그 다음에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이해하기 힘든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밀어붙이기는 박 대통령이 국토부 장관을 질책하면서 했던 말처럼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격의료 뿐만 아니라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와 영리자회사 허용을 추진하는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정책도 같은 상황이다.

국민의 건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정책을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더욱이 국회를 통한 입법 논의도 거치지 않고 해당 부처의 권한이 시행규칙 개정과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정책이 시행될 경우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료생태계에 어떤 혼란을 초래할 지 무수히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복지부가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등의 정책을 막무가내로 강행하는 배경에는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을 통해 창조경제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보건의료 등 서비스 분야에서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보건의료를 비롯한 서비스 산업은 고용창출력이 높고 창출되는 일자리의 품질도 매우 좋은 만큼 관련 산업의 규제완화를 지속적이고 적극적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곧바로 '시그널'이 되고, 관련 부처에서는 정책 추진실적 압박을 받게 된다.

교통정책보다 더 신중해야 할 보건의료 정책에서 정작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도록 등 떠미는 건 다름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