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삼성서울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중동호흡기증후군 대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의료진이 한 이 발언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커파란 파장을 일으켰다. 

가장 많은 메르스 감염자가 나온 삼성서울병원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난부터 초기 미숙한 대응과 부실한 방역체계로 감염 확산을 초래한 정부의 잘못을 제대로 짚어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병원과 국가 모두 뚫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삼성서울병원은 다음날(12일) 곧바로 유감을 표명했다. 

병원은 "메르스 사태로 모든 국민이 고통 받는 엄중한 시점에 어제 국회 메르스 대책 특위에서 '삼성이 뚫린게 아니다'라는 취지의 신중치 못한 발언이 나온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환자 곁을 지키고 끝까지 치료하는 것은 병원과 의료인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병원 실무자의 부적절한 발언은 이러한 저희 병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이번 메르스 사태를 초래한 방역체계의 구멍은 어디에서 뚫렸을까.핵심 역할인 방역 업무는 제쳐두고 진료에만 치중한 보건소

국가방역체계의 핵심 조직인 질병관리본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체계를 책임지는 보건소에 이미 구멍이 뚫려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다. 

우선 지역내 공중보건사업의 최일선기관인 보건소가 진료업무에만 치중하다보니 감염병 관리에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료계는 2003년 사스(SARS)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을 겪으면서 신종 감염병의 국내 유입과 급성감염병 발생에 대비한 보건소의 감염병 예방·관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러나 각 지자체는 이런 우려를 무시하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보건소의 진료기능 강화에 몰두해 왔다. 

특히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자체장이 표를 의식한 선심성 보건의료행정을 적극 펼치면서 보건소는 건강증진과 방역 업무보다 진료서비스 제공으로 내몰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통계연보를 통해 건소와 보건지소 등 보건기관의 진료비와 급여비 추이를 보면 연도별로 보건기관의 총 진료비는 2008년 1,539억원, 2009년 1,719억원, 2010년 1,742억원, 2011년 1,748억원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건보공단에서 보건기관에 지급한 보험 급여비도 2008년 1,199억원에서 2009년 1,337억원, 2010 1,355억원, 2011년 1,359억원으로 늘었다. 

이러다 보니 지역별로 홍역 등이 발생해도 보건소의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13년 경남 창원에서 홍역이 집단발병 했을 때도 관할 보건소의 미흡한 감염병 예방·관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각 지자체의 보건소는 속수무책이었다. 

격리대상인 메르스 의심환자를 제대로 모니터링 하지 못했고, 의료기관에 신속하게 감염병 발생 정보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질병 예방과 전염병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는 소홀히 하고 진료 기능만을 늘려 건강보험 재정만 축내고 민간의료기관과 환자를 가지고 경쟁하는 보건소에 대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질병 예방과 전염병 관리에 역량을 집중하고 일선에서 발빠르게 움직여야 할 보건소는 각 지자체에 소속되어 지자체장들의 선심성 행정의 도구로만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자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보건소를 방역 등 감염병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기능을 개편하는 조치를 취했다. 

복지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보건소의 기능개편 방침에 따르면 메르스 발생지역 보건소의 경우 만성질환 관리 등 기존 업무는 잠정 중단하거나 최소화하고, 기존업무 인력은 즉각 메르스 대응업무에 투입토록 했다. 

또 메르스 미발생 지역 보건소 인력은 메르스 발생지역의 보건소 또는 대책본부 인력으로 재배치해 현장에서의 즉각 대응을 강화토록 했다. 

앞서 복지부는 2012년부터 보건소의 진료대상 제한과 본인부담 인상 등을 통해 진료기능을 축소하는 방침을 세웠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진작에 복지부가 보건소의 진료기능을 축소하고 방역 업무를 강화할 수 있도록 개편했더라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다 적극적인 초기 대응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질병관리본부 직원 44% "신종감염병 발생시 역할 모른다"

2003년 사스 대유행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 관리를 국가적 차원에서 핵심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국립보건원을 확대 개편해 출범한 조직이 바로 질병관리본부다. 

2004년  1월 출범한 질병관리본부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감염병 대응 및 예방 업무였다. 

이를 위해 질병관리본부 내에 감염병관리센터가 설치하고, 여기에 감염병관리과, 감염병감시과, 공중보건위기대응과 등 6개 부서에 걸쳐 90여명 이상의 인력을 배치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제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높다.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을 때 중동지역에서의 메르스 관련 정보를 근거로 전파력이 약하다는 점만 강조하면서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특히 초기에 메르스가 발생한 병원의 격리대상자를 너무 좁게 잡은 탓에 2차, 3차 감염이 속출했고, 결국은 병원간 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메르스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허술한 역학조사와 부실한 격리대상자 관리로 이웃국가에까지 민폐를 끼치는 국제적 망신을 샀다. 

메르스 감염 확산이 한달 가까이 이어지는 지금까지 질병관리본부는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뒷북대응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말 강원대의 의뢰해 수행한 '신종감염병 대유행 시 질병관리본부 비상인력 운영계획 연구' 보고서를 보면 지금의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신종감염병 발생시 역할을 알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질병관리본부 직원 297명 중 '아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109명(36.7%)에 달했다. 심지어 '전혀 아니다'고 응답한 직원도 22명(7.4%)이었다.

게다가 질병관리본부 전체 직원 중 49.2%는 '우리나라는 신종감염병에 안전한 나라'라는 질문에 '아니다'(120명) 또는 '전혀 아니다'(26명)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신종감염병 발생 시 대응을 위한 적절한 물자준비'에 대해 전체 응답자 295명 중 111명이 '미흡하다'고, 11명은 '매우 미흡하다'고 답해 전체 42%가 부정적인 답변이었다. 

'신종감염병 진단 및 검사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응답자 295명 가운데 36%만 '매우 또는 잘 운영되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미흡하다'(33%)거나 '보통이다'(31%)고 응답했다. 

우리나라가 신종감염병 발생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신종감염병 발생시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반 가까운 직원이 모르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신종감염병 발생시 대응물자도 부족하고, 감염병 진단검사 가능 여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가방역체계의 가장 중심기관 직원들이 이런 상태에서 지난달 20일 국내 최초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 환자는 무려 4개 의료기관을 경우한 뒤였다. 

그나마 최초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 및 밀접접촉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조기에 사태를 진정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부실해 결국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 2차 진원지가 됐다.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전문가 대책 논의' 회의에서 연세대 보건대학원 전병율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신종플루 때는 최초 확진환자가 검역과정에서 확인이 되고 그 이후에 접촉자들이 계속해서 확인이 되는 상황이 국민에게 비치면서 어느 정도 정부의 예방.통제 기능에 대해서 신뢰를 줬다고 생각한다"며 "반면 메르스는 입국 이후 환자가 발생하고 진단하기까지 무려 10일이나 공백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어떻게 보면 질병관리본부가 대응을 못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강원대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신종감염병 발생에 따른 비상대응업무에 대해 숙지도가 비교적 낮았으며 관심도 또한 낮은 수준이었다"며 "그리고 교육 및 훈련에 대한 수행이 부족했고, 전문인력의 수도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결과는 신종감염병 발생 시 비상대응에 관해 비교적 낮은 수준의 대응체계가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안타깝게도, 메르스 사태로 이 보고서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