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전국 8만여 개 요양기관을 상대로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 교육 시행을 예고해 개원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 불거진 의료정보업체와 통신사 등에 의한 환자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을 계기로 의료기관과 약국 등의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되면서 '사고치는 사람 따로, 뒷수습하는 사람 따로'라는 불만이 터지고 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심평원은 오는 18일 광주와 강원을 시작으로 25일 서울과 제주까지 전국 9개 교육장에서 8만4,275개 요양기관 개인정보보호 책임자를 대상으로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한다. 

이번 교육은 정부의 개인정보보호 관리실태 일제점검에 대비한 조치다. 

앞서 지난달 23일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은 의료정보업체와 다국적 의료통계업체, 통신사 등에 의해 국민 4,400만 명의 진료·처방정보 약 47억 건이 불법 수집·판매됐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사건에 대한 후속조치로 의료기관과 약국의 개인정보 관리실태를 일제 점검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일단 요양기관이 자율적으로 개인정보보호 사항을 점검·보완하도록 한 뒤, 자율점검 교육에 참여하지 않거나 부실점검한 기관에 대해서는 현장점검을 벌이기로 했다. 

교육에 참가하면 현장점검을 면제받는 셈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이번 자율점검 교육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우선 교육대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환자 진료·처방 정보 유출 사건의 주범은 의료정보 관련기업과 약학정보원 등의 관련 업체들인데 정작 개인정보보호 교육과 실태점검을 받는 것은 피해자나 마찬가지인 요양기관이기 때문이다.  

관련 업체들은 병원과 약국도 모르게 환자 진료·처방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고 판매했지만 정작 요양기관이 진료정보를 유출한 것처럼 오해를 사기도 했다.  

게다가 교육 일정을 평일로 잡은 것은 요양기관들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동네의원과 약국에서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 교육에 참여하려면 사실상 오후 진료나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이번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은 일부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업체들 소행인데 마치 의원과 약국의 잘못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핵심을 왜곡한 것"이라면서 "또한 교육일정을 평일로 잡은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 문제는 의사협회 차원에서 강력히 문제를 제기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에서도 요양기관 관련 외주 전산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은 대규모 진료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된 성명서를 통해 "국회에서는 정부의 병원·약국 관련 외주 전산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환자 개인정보 및 질병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거나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관련 법 제정이나 개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이번 교육을 주관하는 심평원 쪽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평원 관계자는 "교육에는 요양기관에서 진료비 청구를 담당하는 직원이 참석해도 상관없으며,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불참할 경우 정부의 현장점검 대상에 오르긴 하겠지만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만 잘 준수하고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병원 진료기록 외부보관·공유 추진하는 정부

한편 환자 진료·처방 유출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의료기관 내에서만 보관할 수 있는 의료정보의 외부 보관은 물론 개인진료정보 공유까지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래산업선도기술개발사업의 신규과제로 '개인건강기록(PHR) 기반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시스템 개발'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지난 2~3월 시행계획 공고를 최종 사업자 선정을 완료했다.  

산자부는 이 사업을 통해 의료기관 내에서만 보관할 수 있는 개인 진료정보를 의료기관 외부에서 보관하고 공유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114건의 '규제기요틴' 과제에는 '의료기관 진료기록 관리·보관의 편의성 제고'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이 과제는 의료정보의 외부 보관 및 공유를 허용해 소규모 의료기관의 정보관리 편의를 제고하자는 취지로, 정부는 올해 안에 관련 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