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이평수 연구위원 “원격의료·원격진료·원격모니터링 뒤죽박죽 섞여”

[라포르시안] "현재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수술칼이 엄연히 있는데도 수술을 하면서 식칼을 쓰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념도 목적도 분명하지 않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이평수 연구위원은 지난 2일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분석자료를 근거로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금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원격의료의 개념부터 정리해 혼란을 방지하고, 개념이 정리되면 그에 따라 원격의료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제시해 당사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정부가 추진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에 따르면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원격의료는 2013년 기획재정부가 의료의 접근성 제고라는 기존 명분 외에 이용편의라는 명분을 추가로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의료단체와 경제단체는 여건 미흡과 정부의 일방적 추진에 반대하면서 입법 추진이 중단됐다. 무엇보다 의료 관련 소관부처도 아닌 기재부가 대통령이 참석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필요성을 제안하고 의료법 개정안까지 제시하면서 범 정부차원의 정책이 되어 버렸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복지부는 뒤늦게 2014년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사와 환자 간에 일어나는 모니터링을 포함한 진료활동 전반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 뼈대다. 

이 위원은 "원격의료 문제의 원인은 정부가 원격의료 개념을 혼동하면서 이 서비스가 활용되어야 할 경우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며 "원격의료, 원격진료와 원격모니터링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원격의료라고 표현한 것이 혼란의 일차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렇게 시작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사업의 목적이 불분명한 결과를 낳았다. <관련 기사: ‘원격의료 맹신론’에 빠진 복지부…“여기에도 좋고, 저기에도 효과”>

이 위원은 "두 차례의 시범사업은 의료법 개정을 위한 검증수단으로 충분치 않다"면서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간호사 등 코디네이터라는 중재자가 개입된 원격진료이거나 특정 의사로부터 지속적인 진료를 받는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정보통신시스템과 함께 환자 상태를 측정할 장비의 활용이 필수적이며,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에는 이런 것을 검증하기 위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효과를 과장하고 결과를 의료법 개정 근거와 연계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시범사업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은 "정부가 원격의료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면 개념부터 정리하고, 원격진료는 대면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며 "원격모니터링은 대면진료의 보조수단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 과정에서 활용되는 정보통신시스템과 장비 등에 기술적, 임상적 안전성과 안전성에 대한 최소 기준의 마련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선언해야 한다는 점도 꼽았다. 

이 위원은 "정부의 이런 조치와 변화가 선행된다면 의사단체를 비롯한 당사자들과의 생산적인 논의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