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수련병원에서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 제한 등이 법제화됨에 따라 전공의 지위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진섭 세브란스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지난 4일 사립대의료원협의회-사립대학병원협의회 공동 주관으로 열린 '미래의료정책포럼'의 주제발표를 통해 "전공의 수련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건양대병원 당직비 소송'과 유사한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전공의 지위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양대병원 당직비 소송 사건은 2010년 2월부터 10개월간 이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C씨가 198일 동안 당직근무를 하면서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했다며 병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을 이른다.
1심에서 병원이 C씨에게 밀린 임금 3,000여 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병원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오는 8월13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최진섭 부장은 "건양대병원 판례를 보면 인턴을 근로자로 보고 당직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전공의에게 근로기준법에서 정한대로 월급을 수고 수련비용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전공의들도 자신들의 지위에 대해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전공의 2,014명을 대상으로 이중적 지위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2.7%가 '피교육생이자 근무자'라고 답했다.
'근무자에 가깝다'거나 '근무자'라고 인식한 비율도 44.2%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피교육생에 가깝다'거나 '피교육생'이라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문제는 전공의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경우 병원들의 비용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이 개정된 수련규칙을 적용해 증가가 예상되는 당직비 총액을 계산한 결과, 병원내 기준 적용시 약 26억7,000만원이, 근로기준법 적용시 67억7,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에는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에 따라 필요한 대체인력 인건비 23억7,000만원도 포함됐다.
최 부장은 "결국 당직비, 초과근무 수당 등 관리비용 증가와 지속적인 전공의 정원 감축에 따른 대체 인력 수요 등으로 병원들의 경영 악화가 우려된다"며 "정부의 전공의 양성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임을기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올해 말까지 비용 지원 규모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현재 병원협회와 TF를 가동하고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줄어드는 일, 대체인력 투입 규모, 비용 등을 조사할 예정이며, 이를 토대로 정부 입장에서 비용지원과 규모를 연말까지 마련하려고 한다"면서 "정부도 무책임하게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게 아니다. 수련병원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고년차 전공의들 수련환경 개선방안에 일부 저항감"
모든 전공의들이 수련환경 개선에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심태선 서울아산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수련환경 개선방안을 병원에 적용하면서 느낀 점은 일부과는 지금의 현실로는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교수 등이 지금의 관행을 바꾸기 어려워한다"면서 "전공의들도 레지던트를 중심으로 저항감이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인턴과 1~2년차 레지던트는 수련환경 개선에 따라 업무 부담이 줄어들지만 3~4년차는 업무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심 부장은 "전문의 시험을 위해 수개월의 공백이 있는데, 전공의들은 그것도 그대로 갖기를 원한다"면서 "수련환경을 개선하는 목적은 전공의 수련의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의학회, 병원협회, 지도전문의단체, 전공의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수련 및 전문의시험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성인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수련환경 개선 8개 항목은 현실에 맞지 않을 뿐더러 근로기준법에 턱없이 못미친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근무시간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면서 "그러나 최소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병원장들께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의 총평을 맡은 박인숙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인턴과 레지던트는 전문의로 가는 트레이닝 코스이다. 따라서 수련규정을 법적으로 일률화하면 안된다. 수련비용도 정부에서 수가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전공의 신분이 근로자와 피교육자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느냐고 하는데 저는 피교육자에 더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 박진규 기자 hope11@rapportia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