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정부가 의료기관의 진료기록 관리·보관의 편의성를 제고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진료기록의 외부 보관 허용을 추진하고 있어 환자정보 유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진료기록의 의료기관 외부 보관시 개인정보 대량유출 위험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개진해 놓고 이제와 입장을 뒤 바꿨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진료기록의 외부보관에 이어 진료정보 공유를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돼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개인의 건강정보를 이용한 의료산업화 우려도 만만치 않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올해 초부터 진료기록 등 의료정보의 보관·관리 편의 및 안전성 제고를 위해 의료 관련 단체를 대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최근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전자의무기록의 의료기관 외부보관 시 필요 시설·장비 기준안'을 마련했다. 

복지부는 올해 1~2월 병원협회와 의료정보학회, 의료정보업체 등을 대상으로 진료기록 관리 환경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 데 이어 3~5월 사이 병의원과 보건소를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등의 관련 단체를 대상으로 개선방안 설명회도 개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근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진료기록의 보존 장소 선택권을 명시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외부 보관시 필요한 시설·장비 구비 의무를 규정한 기준안을 마련했다. 

복지부가 마련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기관 외부의 전자시스템에서 전자의무기록을 관리·보존할 경우 ▲전자의무기록의 생성 및 보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이력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복제·저장에 필요한 백업 장비 ▲네트워크 및 시스템 보안에 관한 설비 및 장비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장비 ▲별도의 출입통제구역의 설치와 그 장소의 통제 및 감시를 위한 설비 ▲재해예방에 관한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

전자의무기록의 의료기관 외부보관시 필요한 시설·장비 기준안은 ▲전자의무기록의 생성 및 보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증적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복제·저장에 필요한 백업 장비 ▲네트워크 및 시스템 보안에 관한 설비 및 장비 등에 관한 주요 기능 및 설비 요건을 명시해 놓았다. 

복지부는 진료기록의 외부보관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지원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이 진료기록의 외부보관을 실시하면서 법령에서 정한 보안 조치를 완료한 것으로 확인되면 정보보호 인증 수가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사정이 열악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보안·서명·표준 등 공공성이 높은 필수 영역을 정부(공공기관)가 구축·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즉, 국가가 진료기록 외부보관을 위한 운영 인프라를 제공․관리하고, 개별 프로그램은 일반기업이 참여해 서비스가 가능한 오픈소스 플랫폼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렇게 하면 정부의 공공인프라 제공으로 비용절감, 정보보호수준 강화 및 안정적 시스템 운영이 가능하고, 다양한 기업의 참여로 의료-IT 서비스에 대한 의료기관의 선택권 제고 및 기업 경쟁력 강화 효과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진료기록 관리보관 개선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문제는 정부가 진료기록의 의료기관 외부보관 허용을 추진하는 진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다.  

정부 주장처럼 의료기관 외부에 진료기록 보관을 허용하는 목적이 보관·관리의 편의를 높이고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앞서 정부는 작년 12월 114건 규제기요틴 과제를 발표하면서 '의료기관 진료기록 관리·보관의 편의성 제고' 건을 포함했다. 

이 과제는 의료정보의 외부 보관 및 공유를 허용해 소규모 의료기관의 정보관리 편의를 제고하자는 취지로, 정부는 올해 안에 관련 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의료법 및 의료법 시행규칙 상에는 의료기관에서 생성된 전자의무기록은 병원 내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백업저장시스템에 관리 보존해야 하며, 병원 밖에서는 보관할 수 없게끔 규정돼 있다. 

정부는 관련 법규정을 개정해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을 IDC(인터넷데이터센터) 같은 곳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고, 진료정보 공유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러한 규제개선을 통해 영세 의료기관이 진료기록 관리·보관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의료정보의 보호 및 활용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의료정보 저장 및 공유 서비스 사업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진료기록을 외부 IDC(인터넷데이터센터)에 보관하는 클라우드 기반의 보관·관리가 허용되면 원격의료나 건강관리 사업 등을 위한 환자정보 공유도 한결 수월해진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개인 진료정보를 의료기관 외부에서 보관하고 공유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자부가 실시하는 '개인건강기록(PHR) 기반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시스템 개발' 사업은 의료기관 내에서만 보관할 수 있는 개인 진료정보를 의료기관 외부에서 보관하고 공유하는 방식을 기반으로 질병 사후 관리 및 맞춤형 건강관리·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이미 의료정보 전문업체와 일부 대학병원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으며, 앞으로 진료정보의 개방·공유에 관한 기술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진료기록의 외부 보관 및 공유가 허용될 경우 최근 문제가 불거진 것처럼 의료정보업체를 통해 환자의 진료기록이 무단 전송·보관되는 것은 물론 외부 업체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다수의 의료기관에 분산 보관되는 개인 진료정보가 IDC 등을 통해 통합관리될 경우 해킹 등을 통한 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높고, 그 피해는 개별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유출 사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복지부, 작년 5월엔 "개인정보 대량유출 위험성" 반대의견 제시 

실제로 복지부도 이러한 규제 개선 방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의료자원과는 지난해 5월 '의료 전자의무기록 관리 보존방법 개선' 건의에 대한 부처의견을 통해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법제 및 기술적 부분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선행되어야 한다"며 "전자의무기록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 및 연구용역을 진행한 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방안에 대한 내부검토 후 회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진료기록을 의료기관 외부에 보관하는 방안의 일차적인 목적이 정보보호에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복지부는 "외부 저장시스템의 활용은 정보보호 보다는 정보관리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외부 보관시스템의 활용을 통해 진료정보의 보안을 강화하는 방안은 최적의 대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또 "의료정보가 IDC를 통해 통관관리.저장되는 경우 개인정보의 대량유출 위험성이 높다"며 "외부통합시스템에서 관린되는 정보가 유출될 경우의 피해는 개별 의료기관의 정보가 유출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과제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사실상 진료기록의 외부보관이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정보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으며, 해킹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개별 의료기관에서 보관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랬던 복지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올해 초부터 의료 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진료기록 외부보관 방안을 마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현재 의료계는 진료기록 외부보관 허용에 반대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는 "환자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근본 목적의 실현을 위해 전자의무기록을 의료기관 외의 서버에 별도 보관 및 사기업 운영 소프트웨어 판매 계획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명확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의료기관 외부에 진료기록 등 의료정보 보관을 허용하는 목적이 원격의료 활성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의혹을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원격의료는 필수적으로 민간 통신기업에 개인의 질병정보 집적을 허용하므로 질병정보 유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원격의료 도입을 위해 개인 의료정보의 외부보관 및 공유를 허용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의료정보를 손쉽게 유출해 상업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